삼국지 (三國志) [두산백과 원문]
正史 삼국지 (2007.3) : 16년만의 국내 최초 완역본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정사(正史)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名著)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記事)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史料)도 지나치게 절략(節略)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南朝) 송(宋)의 문제(文帝 407~453)는 429년에 배송지(裵松之 372-451)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위키백과 원문]
중국의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14세기에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定本)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지 [이문열 옮김, 초판 1988.5]
《삼국지연의》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 233∼297)가 집필한 《삼국지》와 배송지(裵松之 372-451)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원본(原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최초 판본은 명(明) 가정제 1년인 1522년에 판각한 “가정본(嘉靖本)”이며, 이 판본은 나관중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으로도 불린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여 모두 24권 240절(칙)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중화권에서는 《삼국연의(三國演義)》라고 하며, 영미권에서는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번역되는 《삼국지연의》는, 중국 본토의 가정본(나본)과 명나라 때 전해지던 《삼국지연의》의 읽기 불편한 점을 청나라 때 모종강(毛宗崗)이 읽기 쉽게 다시 엮은 것이다. 이를 중국에서는 본문인 가정본(나본)과 비교하여 “모본(毛本)”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종강 저의 《삼국지연의》”라고는 따로 부르지 않으며, 그것까지도 “나관중 저의 《삼국지연의》”라고 주로 부른다.
이문열 등 대한민국의 많은 소설가가 《삼국지연의》를 번역했으나, 그들은 거의 한결같이 당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에서 원본을 가져 왔다. 그러나 대만에서 가져온 그 원본은 가정본(나본)을 각색한 모본(毛本)으로서 제대로 된 원본 《삼국지연의》가 아니었고, 지명이나 인명 등에서의 오류도 매우 심각했다. 1992년 이래, 한·중 수교로 중국의 《삼국지연의》 원문 문서가 대거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로 인해 중국과 대만의 문서를 비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정본(나본)을 번역한 번역본 역시 한국 시장에 등장하게 되었다.
▶ "삼국지연의"의 3대 대전 [출처: 네이버 지식iN] -. 관도대전(200) : 조조 vs 원소 벼랑끝에 뒤몰린 조조가 원소의 대공세를 막아낸 대전. 이 대전 직후 원소군은 기세가 확실히 줄어들고, 반면 조조군은 확실히 증가한다. -, 적벽대전(208) : 조조 vs 주유+제갈량 조조군은 기세가 등등했으나, 회계지역의 풍토병과 연합군의 화공으로 인해 대패. 동원병력 : 80만 vs 10만 (추정되는 실제 병력 : 약 24만 vs 약 5만) -. 이릉대전(222) : 유비 vs 주유 관우의 복수를 위한 유비의 대공세. 육손의 화공과 수군연합군에 의해 촉의 많은 장수와 충신이 손실되고 전멸. 이 이후 촉군은 그 기세가 확실하게 줄어든다.
▶적벽대전 (赤壁大戰) [두산백과 원문] 중국 삼국시대인 208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자위현[嘉魚縣]의 북동, 양쯔강[揚子江]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촉(제갈공명)과 오(주유, 황개)의 연합군이 적벽에서 조조를 대파. 이 결과 손권의 강남 지배가 확정되고, 유비도 형주(荊州:湖南省) 서부에 세력을 얻어 천하 3분의 형세가 확정.
▶ 주요 등장인물 [위키백과]
위(魏) AD220~265 (45) : 조조(曹操 155~220) 사마의(司馬懿 179~251)→사마사-사마소→사마염, 하후돈(夏侯惇 ?~220) 촉(蜀) AD221~263 (42) : 유비(劉備 161~223) 관우(關羽 162~219), 장비(張飛 167~221), 제갈량(諸葛亮 181~234) 조운(趙雲 168~229), 황충(黃忠 145~222), 마초(馬超 176~226) 오(吳) AD222~280 (58) : 손권(孫權 182~252) 주유(周瑜 175~210), 육손(陸遜 183~245)
진(晋) AD265~317~420 (155) : 사마염(司馬炎 236~290)
삼국지 (용의 부활, 2008.4) 적벽대전 1부 (거대한 전쟁의 시작, 2008.7)

Posted by o자세o (pose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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