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바라보는 다섯 개의 시선
[출처: 삼 성 | 원 문 (2008.3.24)]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고기 굽는 테이블의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본 해외 유명 디자이너는 "굿 디자인(Good Design)"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평범한 테이블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디자인'이다. 독일에서는 '과학'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예술'로,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공예'로 정의되는 디자인.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1) 사물은 존재 이유를 인간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사물을 보고 이해하고 있을까? 사물이 가지고 있는 형태? 쓰임새? 아니면 브랜드? 디자이너는 과연 어떤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어떤 시각에서 사물을 디자인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물은 존재 이유를 인간에게 묻는다." 인간과 호흡하려 하고 있는 사물을 우리 인간은 사물 그 자체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물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치중해 있는 지금의 현실 문화에서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사물의 내면을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물과 인간이 호흡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물의 본질에 귀결된다. 결국 디자인이란, 사물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은 자신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뽐내며 저마다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물의 자태를 디자이너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인가, '재활용'인가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이란 존재의 본질, 즉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에 맞게 더 좋은, 더 나은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더 나은 생명이란, 그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와 존재가 다른 사물의 존재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동양인, 한국인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본질적인 형태를 거부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서양인, 외국인이라는 재활용 제품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사물이 가진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라볼 때 재활용이 아닌 '디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고자 할 때 더욱 더 중요한 요인이 된다.
2) 아이디어와 디자인은 다르다
최근에는 '아하!' 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아이디어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제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마치 아이디어가 디자인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포스탈 카드 램프(Postal Card Lamp)
포스탈 카드 램프(Postal Card Lamp) 야광
디자인과 아이디어는 사물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사물에 대한 순간적 통찰이나 발상에서 시작하고, 디자인은 사물의 존재성에 가치를 두고 시작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은 같지만,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느냐 다가가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디자인은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물이 상징하는 기호에 대해 고민하여 결정 짓는 것이므로 아이디어는 디자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탈 전구 램프
멋과 기능을 함께 고려한 포크
4) 한국적 디자인은 생활문화 속에 녹아 있다
한국적 디자인이란 한국의 문화를 담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한국이란 '나(我)'를 말하는 것이고, 디자인이란 '현재'를 뜻한다. 즉 현재의 한국문화를 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전통 문양을 현대적 형태와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쓰고 사용하는 것들을 현 시대에 맞게 재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적 디자인'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녹아 있다. 사진은 커피가 쓴 한글 자모 이응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인 그룹 '드룩 디자인(Droog Design)이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드룩 디자인의 대표가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고기 굽는 테이블의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고 "굿 디자인(Good design)"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테이블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어느 고기집에나 다 있는 그냥 평범한 테이블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한국적 디자인이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사물(事物)인 것이다.
5)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활용과 디자인을 결정한다
버려지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사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버려진 사물의 상태를 보고 우리는 그 사물의 본질에 시선을 돌린다. 보여지는 사물의 상태가 본연의 본질과 일치한다면, 즉 사물의 상태가 양호하다면 주워서 다시 사용할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는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화적, 시대적 배경에 좌우된다.
버려진 사물의 상태가 이미 본연의 모습을 상실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쓰레기' 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이 박스였다면 동네 할머니였을 것이고, 고철이었다면 고물장수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로 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효용성이 남아 있는 물건에 '재활용'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다.
재활용은 버려진 사물의 남아 있는 효용 가치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디자인과 재활용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재활용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버려진 사물의 아직 남아 있는 효용 가치를 이용하는 것이고, 디자인은 버려진 사물을 그것의 본질적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디자인 한다고 할 때 만약 페트병이 가지고 있는 효용과 기능을 최대화하지 못한다면 재활용(Recycle)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이유 있는 행위, 이유 있는 사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우리 사회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사물로 바라보는 시대를 지나, 자기 자신 이 외의 모든 것을 사물로 바라보고 있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인간도 디자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필자 김대성 / 가구 및 제품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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