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 계획

도시디자인이 도시를 살릴 것인가?

o자세o = 2008. 9. 28. 15:07

 

[출처: 삼 성 | 원 문 (2008.4.14)]      

 

한국의 도시들이 대부분 깨끗하고 편리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어도,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도시 전체의 시각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새롭게 리모델링된 도시 공간이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도시'라고 볼 수는 없을 터. 그러므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일은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요즘 디자인 열풍이다. 문화와 역사, 생태와 환경의 유행도 한물간 모양이다. 대신 '디자인'이라는 말이 지금 세간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하긴 그동안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사실이다. 도시 경관의 한 예로 시각공해를 일으키는 간판 문제에 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근자의 일이다.

하지만 거리의 간판들이 여전히 어지럽고 복잡한 걸 보면, 간판 문제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 난제인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수많은 간판정비 사업의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2010년 ‘디자인수도'로 선정되고 새 정부는 국가 차원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구상 중에 있다. 

 

  

 

한국은 지금 디자인 황금시대

 

가로등과 벤치, 거리의 공적 시설물 등을 일컫는 '거리가구(street furniture)'에는 그동안 디자인 비용을 따로 책정하지 않고 시공비만 지불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 시설물의 디자인 포맷과 매뉴얼이 제작 중이다. 공원과 광장 같은 전통적인 공공공간에는 이전과 비교하면 과도한 비용을 들여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조형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아파트도 디자인을 달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간판과 사인물, 거리의 공적 시설과 거리가구, 건물 앞 미술장식품과 광장 조형물들이 달라지면서 미술과 건축 차원의 변화 노력은 이제 도시 전체의 시각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다. 서울은 디자인본부를 만들고, 광주는 공공디자인 조례를 제정하고, 안양은 공원과 도시공간을 무대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매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도시 미관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여기저기 진행 중이다.

 

특히 서울시는 '도시갤러리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서울의 30여 개 공공공간을 작품화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도시가 작품이 되려면 무엇보다 일상공간에 디자인으로 개입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서울시도 도시갤러리프로젝트를 통해
옥수역 중앙통로, 불광천 다리 밑 등 30여 개의 공공공간을 작품화했다.

 

이렇게 예술 혹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를 마케팅의 장소로 삼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요즘 세계적인 도시들은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문화산업의 패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브랜드 가치를 높여 세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을 말한다. ‘세계디자인도시'를 향한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한국의 도시들이 뛰어든 것이다.

 

 

도시 디자인의 핵심은 미학과 브랜드 가치

 

세계도시 전략으로 ‘디자인'을 내세운 대형 도시프로젝트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 배경에는 문화와 디자인을 발전 전략으로 삼는 세계적 흐름이 존재한다. 세계적인 이 흐름이 한국사회에서는 좀더 압축적으로 존재한다.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 나아가 문화의 시대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빠르게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욕구의 증대는 전시행정과 장소마케팅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도시의 용도와 기능을 재배치하는 도시개발은 재개발, 리모델링, 고급화의 과정을 필히 거치게 마련이다. 이제 도시가 살아남는 방법은 기능적 편리함을 충족시키는 단계를 넘어 문화와 환경 그리고 더 좋은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디자인이 도시마케팅의 조건이 되려면 브랜드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도시의 문화적 리모델링의 핵심은 디자인의 미학과 상징적 가치다.

 

또한 국토의 새로운 기능 배치와 신도시가 계속 개발되면서 원도심의 건물들이 비워지거나 기능이 정지되는 건물들이 생겨남으로써, 용도 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예술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신축과 재생에 초점이 맞춰진 개축 혹은 리모델링이 유행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새롭게 확보된 공지에 공공공간을 디자인하고, 기업과 상점들은 상업공간을 리모델링하여 공개공지(open space)를 마련하고 새로운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자인은 삶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

 

'디자인 황금시대'를 맞이하여 공공공간을 둘러싼 주체들의 역학도 바뀌고 있다. 정부ㆍ기업ㆍ시민들 간의 관계가 재구성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협치, 다양한 조직의 상호 협력체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방ㆍ정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던 광장ㆍ공원 같은 전통적인 공공공간들이, 새로운 거버넌스에 의해 보완되거나 어떤 경우는 퇴출되고 있다. 

 

정동의 거리가구

 

새로운 거버넌스는 쇼핑몰ㆍ오피스지구ㆍ엔터테인먼트 콤플렉스ㆍ업무증진지구(BID)의 기업 거버넌스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센터ㆍ공원 등의 자산을 커뮤니티가 소유하는 추세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 거버넌스까지도 포함한다. 

 

기능적 편리함을 넘어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한 디자인이 많아질 때
도시는 점차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공공공간을 둘러싼 거버넌스가 변화되면서, 공공공간이 점진적으로 사유화되고 공개된 공공공간이 감소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상업적 공공공간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공공공간'이라는 주제와 ‘쇼핑'이라는 프로그램의 결합은 새로운 문화적 과제다. 디자인을 잘하면 상업행위와 문화적 서비스는 서로 윈윈하는 상생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컨대 백화점의 유모차 대여와 기저귀방 설치는 상업공간을 축소시키지만, 상업행위는 활성화시키고 고객들에게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내어 주는 디자인은, 결국 상품을 판매하는 좋은 방법이다.

 

디자인은 상품과 공간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창의적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과 고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적 기획이다. 이제 '디자인이 우리 도시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고, 유행을 따라 하는 것보다 먼저 디자인 시대 우리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 필자

제홍 / 문화디자이너, 어번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