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삼 성 | 원 문 (2008.4.18)]
우리나라는 분야별로 유능한 인재들이 많은 나라이다. 공공디자인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뛰어난 도시 디자이너들이 이미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도시경관이 아름답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도시의 경관은 한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물론 우리 모두가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통합적ㆍ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갈 때, 우리의 도시가 좀더 패셔너블해질 수 있다.
공공디자인을 실행하는 사례를 통해 일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방법,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 나가는 방법에 대한 Tip을 살짝 얻어 보자.
개인과 사회의 문제도 공공디자인의 대상이다
공공미술이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다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난관에 종종 부딪친다. 주민들의 필요를 조사하면, 예술과 디자인에 앞서 보일러 하나 놔 달라는 분도 있고 문화복지를 요구하는 분도 있다. 가로 시설물을 디자인할 때는 바닥 포장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공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인프라 디자인이 안 되어 있다는 얘기다.
또 간판 디자인을 할 때는 디자인적인 차원 외에 상업성을 고려해야 하거나, 업종을 통일하는 문제로 상점 배치를 바꾸어야 하거나, 상업적 성격의 변화와 경영 컨설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나아가 공공성의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과 이윤을 재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다양한 문제들도 디자인의 중요한 대상이다.
서울 삼청동 구두가게의 현물현시 간판
좋은 디자인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능한 디자이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 과정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도시경관이 유능한 디자이너가 없어서 세련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과정을 바꾸면 결과도 달라진다. 프로세스 디자인은, 사람들과 조직의 관계를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디자인본부가 ‘세계디자인도시'(World Design Capital)를 향해 디자인 인프라의 체계를 갖추는 일을 한다면, <도시갤러리프로젝트>는 공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디자인 과정상의 새로운 실험들을 해 가고 있다. 도시를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조형적 작업뿐만 아니라 가로·광장·하천·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소들을 대상으로 미술가ㆍ디자이너ㆍ건축가ㆍ조경가ㆍ기획가 등을 팀으로 구성해 협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작가나 팀을 선정하는 단순한 과정을 다양화했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일차로 선정하고, 전문가의 기술적 자문과 행정적인 문제 해결, 시민 의견 반영 등의 디자인 컨설팅을 거쳐 실시디자인을 해 가는 집중검토회의(Public Charrette)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작품 아이디어는 창의적 진화를 거쳐 도시에 예술적 공간을 창출하게 된다.
미술ㆍ디자인ㆍ건축ㆍ조경이 어우러지는 통합디자인을 하자
리버풀비엔날레와 같이 디자인의 대상을 도시의 공공공간으로 삼는 프로젝트는 한국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공공공간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미술ㆍ디자인ㆍ건축ㆍ조경의 통합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로디자인의 경우가 통합디자인을 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이다. 통합디자인 차원에서 간판과 공개공지를 바라보면 다른 차원이 열린다. 예를 들어 간판을 디자인하면서 간판이 걸린 건물 입면(facade)의 차원, 나아가 거리의 통합적 디자인의 차원을 고려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건물의 후퇴공간(set-back space)에 미술장식품으로 설치함으로써 공개공지에 예술적 요소만 삽입했다면, 이제는 오픈스페이스 전체를 대상으로 통합디자인을 하자는 것이다.
상업적 공공공간에 '프로그램'을 만들자
요즘은 공공공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바뀌고 있어서 기업과 시민들의 참여가 높아졌다. 기존의 전통적인 공공공간인 광장 위에 민자역사가 세워지는 것이 단적인 예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전통적인 활동들이 사라지고 쇼핑이 생활의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면서 실외 광장과 시장이 실내 공간으로 압축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쇼핑을 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의 존재증명이 된 셈이다.
쇼핑몰 같은 상업공간에 실외 공개공지와 실내 광장이 조성되고 각종 서비스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기업의 참여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좀더 유연해졌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제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그러한 사례가 많다. 에비스 스퀘어가든, 록본기 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등. 광장이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고 공공기관의 공적 서비스가 상업적 서비스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더 많은 공개공지를 제공할 것이며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선사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공공공간 디자인은 상업적 공간과 프로그램을 더욱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
영국 버밍엄 브린들리 문화특구 내 광장. 상업공간 안에 광장이 조성되고
영국 워터 스컬프처. 상업공간과 공공 광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자
디자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문젯거리로 가득한 도시를 살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펌프 인터내셔널(PlayPumps International)은 전기시설이 없는 남아프리카 지역에 700대의 플레이펌프를 디자인하여 100만 명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플레이펌프'는 아이들의 놀이기구 원리를 디자인에 채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이용해서 재미있게 놀면 지하수가 펌핑되는 디자인이다.
부족한 전기시설의 문제를 해결한 남아프리카의 플레이펌프.
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이 주최하고 밀머리미술학교가 주관했던 인권ㆍ평화도시를 위한 시민프로그램 역시 문제해결형 디자인이다. '두더지, 말 걸다'라는 이 프로젝트는 복잡한 금남로 지하상가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결 디자인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다. 파이프를 지하상가에서부터 출구까지 연결하여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출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깥 위치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불명확하고 복잡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정표에 대한 문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디자인한 '두더지 프로젝트'에 박수를 보낸다.
광주 금남로 지하상가에 적용된 '두더지, 말 걸다' 프로젝트.
사회가 발전할수록 시각환경은 보다 패셔너블하게 변화할 것이다.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사회는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자신의 패션을 자유롭게 연출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창출하는 것이 앞으로의 이상적 방향이다. 도시의 시각환경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해 공간의 사용자가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자인의 이상이다.
일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잘 디자인하는 사례는 기업 내 다른 일을 하는 조직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며, 또한 전기시설이 없는 남아프리카의 플레이 펌프 분수와 같은 사례는 문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의 조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 글ㆍ사진 류제홍 / 문화디자이너, 어번큐레이터
|
'설계 · 계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컨테이너의 변신은 무죄 (0) | 2008.12.05 |
---|---|
거리에서 찾은 1평자리 트렌드, 스트리트 미니숍 (0) | 2008.12.05 |
도시디자인, 우리 삶의 내용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 공공디자인에서 중요 (0) | 2008.09.28 |
그곳에는 디자인으로 호흡하는 도시가 있다 - 해외의 주요 공공디자인 사례 (0) | 2008.09.28 |
어? 거리가 미술관이 됐어요! - 국내 공공디자인 사례 톺아보기 (0) | 2008.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