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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자세o = 2016. 1. 30. 04:02

 

국화 옆에서 - 서정주 (1915-2000)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소쩍새 : 올빼미과의 새. 일명 귀촉도, 자규. 한(恨)과 원(怨)의 심상으로 고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함.
*뒤안길 : '뒤꼍'의 뜻을 지닌, 으슥하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
*무서리 : 그 해의 가을 들어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늦가을까지의 전우주 만물의 고통과 어려움이 필요하다.
봄이 20대라면 여름은 30대, 그리고 국화꽃이 피는 가을은 인생의 40대를 나타나는데 40대에 비유된 누님의 경우는 '뒤안길'이라는 말이 암시해 주듯이 결코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랜 방황과 시련을 겪은 한 여인이 자성의 거울을 통해 비로소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누님'과 '꽃'은 일치한다.

 

어느날 우연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o자세o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