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 제품디자인

제품 디자인, 이제 아름다움을 넘어 생활을 바꾼다

o자세o = 2008. 9. 28. 14:27

 

[출처: 삼 성 | 원 문 (2008.3.26)]      

 

일본 닌텐도의 글로벌 히트 상품 '닌텐도 DS'는 지하철 풍속도를 바꿔놓았다. 홈바를 적용한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 지펠은 냉장고 문 여는 횟수를 줄였고, 하우젠 드럼세탁기는 '허리사랑 도어'를 채택해 주부들이 허리를 자주 구부려야 하는 불편을 최소화했다. 시각적인 개선을 통한 아름다움의 추구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까지 바꾸는 디자인 제품을 주목해보자!

 

 

1) 글로벌 히트 상품, 지하철 풍속도를 바꾸다

 

지하철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점령하던 전지 크기의 스포츠신문이 타블로이드판 무료 신문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소형 게임기가 지하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지하철의 새 지배자로 등장한, 손바닥 크기에 불과한 직사각형 모양의 이 게임기는 일본 닌텐도의 글로벌 히트상품 '닌텐도 DS'다. 2004년 처음으로 등장해 올해 1월까지 세계적으로 6,480만 대(국내 100만 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글로벌 히트 상품 '닌텐도 DS'는 지하철 풍속도를 바꿔놓았다.
손에 쥘 수 있는 적당한 크기와 키패드를 없앤 편리한 인터페이스가 장점이다

 

닌텐도 DS는 게임의 사용자 층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손에 쥘 수 있는 적당한 크기와 키패드를 필요 없게 만든 편리한 터치스크린 같은 인터페이스 등 닌텐도만의 감각적인 디자인은 게임 소비층을 넓혔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DS하는' 여성이 그들이다.

 

닌텐도의 또 다른 게임기 '위(Wii)' 역시 마우스나 조이스틱으로 작동하던 가정용 게임기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리모컨을 통해 실제 야구를 할 때와 같은 직관적인 경험의 세계로 이끄는 '위'의 위력은 출시 1년여 만에 2,000만 대라는 판매 기록으로 나타났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360 등 성능 면에서 우수한 경쟁 게임기를 압도하고 있다. 오는 4월 위가 국내에 출시된다면 위의 요가 게임에 빠져든 여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닌텐도 'DS'와 '위'가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신 기능 추가에 집착하기보다 사용자의 이용 형태를 분석해 단순화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디자인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디자인의 힘이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놓은 것이다.

 

 

2) 디자인, 기업의 성패 좌우하는 요소

 

1990년대, 상품의 색이나 모양 등 형태 개선에 초점을 두던 시각 중심의 디자인이 청각과 후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 기존의 사용자 행태를 분석해 더 편리하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현하는 데 디자인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생존을 결정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제일기획에 따르면 구매 결정요인 중 디자인의 비중이 1997년 13.7%에서 2007년에는 35.2%로 높아진 반면, 성능은 54.8%에서 31.5%로 감소했다. 디자인 선도기업의 주가는 1994년에는 런던국제증권거래소에 상장된 100개사와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배로 상승했다. 아이팟과 아이폰 등으로 디자인 선도기업으로 부상한 애플의 경우 지난해 브랜드 가치와 매출액이 4년 전에 비해 각각 2배와 1.7배 상승했다. 

 

소니 최초의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TV

 

PC 시장에서 고전하던 애플은 '아이팟'이라는 단순한 디자인의 MP3 플레이어와 아이폰으로 혁신 기업으로 거듭났다. 세계 TV시장에서 소니의 30년 아성을 누른 제품은 삼성전자의 디자인 TV '보르도'다. 'TV=사각형'이라는 틀을 깬 보르도는 삼성전자를 세계 1위의 TV 업체로 만든 1등 공신이다. 보르도 디자인을 총괄해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한 강윤재 상무의 단순한 아이디어 'TV의 양 옆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없애고 싶다'는 바람이 TV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켰다. 

 

세계 TV시장에서 소니의 30년 아성을 누른 삼성전자의 디자인 TV '보르도'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기술 경쟁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디자인은 차별화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고, 이제는 디자인과 브랜드 등 감성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도널드 노먼 교수의 지적처럼, 디자인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 디자이너의 위상도 높아져 애플과 나이키, P&G,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를 부사장 급으로 임명하고 있다. CDO들은 제품개발뿐만 아니라 기획, 생산, 판매에 이르는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3) 아름다움을 넘어 오감을 자극한다

 

디자인은 겉모습과 색상 등 시각적 요소만을 바꾸는 것으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에는 청각과 후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 사용자의 이용 형태 분석을 통해 생활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알레시사가 선보인 스테디셀러 물주전자 '버드 캐틀'은 20년 넘게 매년 10만 개 이상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데, 물이 끊을 때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1위의 휴대폰 업체 노키아의 '8800'은 커버를 열 때 고급 승용차의 배기 음이 들리도록 설정됐고, 레인콤의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클릭스+'의 경우 제품 표면을 눌러서 '딸깍딸깍' 소리를 낸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는 자동차에서 상쾌한 냄새가 나도록 디자인했다.

 

촉각을 강조한 디자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이폰 이후 터치스크린이 버튼을 대체하는 트렌드가 강해지면서 이른바 만지는 느낌을 디자인한 '햅틱(haptic)'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른바 ;손맛'을 강조한 '애니콜 햅틱폰'을 출시해 주목받고 있다.

LG전자는 직사각형 구조의 벽걸이형 에어컨을 정사각형의 액자형 에어컨으로 바꿔 8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딱딱한 가전에 명화나 사진을 액자형 에어컨과 결합시켜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4) 디자인, 생활을 바꾸다!

 

닌텐도 DS가 지하철의 풍속도를 변화시킨 것처럼 제품 디자인이 생활을 변화시키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양문형 냉장고의 홈바다. 삼성전자는 1996년 업계 최초로 홈바를 적용한 양문형 냉장고 지펠을 선보여 10년이 넘도록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유럽 30여 개국에서 선두업체로 자리잡았다. 냉장고 문 여는 횟수를 최소화하겠다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삼성은 물론 전 업계의 트렌드로 굳어졌다. LG전자의 냉장고 '프렌치 디오스'는 냉동실에 비해 사용 빈도가 9배 높은 냉장실을 상단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바꿔 인기를 끌고 있다. 

 

냉장고 문 여는 횟수를 줄여준 삼성전자의 지펠 트윈 홈바 양문형 냉장고

 

제품의 특성상 뚜껑이 전면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드럼세탁기의 디자인을 바꾸는 시도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하우젠 드럼세탁기는 드럼세탁기를 이용하는 주부들이 허리를 자주 구부려야 하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돌이 세탁기와 비슷하게 상단에서 제품을 여닫을 수 있는 '허리사랑 도어' 기능을 채택했다. 이 제품은 지금 국내는 물론 중국과 중동, 동남아, 남미 등으로 수출되는 인기 상품이 됐다.

 

대우일렉은 지난 달 세탁기의 드럼을 11cm 끌어올리고 경사도 40도로 높이는 등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드럼-업' 드럼세탁기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우일렉은 이 제품을 앞세워 국내 드럼세탁기 시장점유율을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은 눈에 띄는 색상이나 문양, 제품 외곽선의 형태를 바꾸는 시각적인 개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각을 넘어 소비자의 촉각과 청각은 물론 후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소비자의 생활환경도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이 어떤 감성적 디자인의 제품으로 우리 생활을 바꿔놓을지 갈수록 흥미로워지고 있다.

 

- 필자

이근형 / <디지털타임스> 디지털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