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The Tao of Physics) [개정 2006.12] 저자 :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 [김용정·이성범 옮김, 범양사, 초판 1979.3]
■ 경향신문 (2004.10.29), 박병철 (대진대학교 물리학과 초빙교수)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옮김]
"최첨단의 물리학과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의 철학 및 종교적 사상 사이에는 모종의 유사성이 존재한다."
과연 그럴까? 객관성과 보편타당한 진리를 줄기차게 추구해온 물리학은 고대 그리스인의 논리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한때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낳았다가, 현대에 와서는 불확정성과 확률함수로 대변되는 양자물리학으로 진화하면서 관측자와 관측대상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양자물리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한 객체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며 그것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현대물리학은 개인(관측자)의 내면세계에서 우주와의 합일을 도출해내는 동양사상과 점차 닮아가는 듯이 보인다.
물론 물리학과 동양사상은 그 목적이 다르다. 물리학은 자연에 내재되어있는 질서를 수학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으로서, "자연은 ~이다"를 말할 수 있을 뿐 "자연은 ~해야 한다"는 식의 지침을 내세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사이의 유사성은 몇 권의 책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서양의 과학이 동양의 종교와 철학으로 점차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
흔히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의 유사성을 논할 때 동양사상은 항상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서양의 과학이 동양사상 쪽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은 10년만 지나도 옛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동양의 종교는 수천년 전의 가르침이 경전에 따라 그대로 전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종교와 그에 기반을 둔 일련의 사상들은 서양의 과학에 못지 않게 과학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수학의 궁극적 기초가 공리(公理)이듯이, 물리학의 궁극적 기초는 실험이다. 실험으로 확인되지 않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동일한 조건에서 행해진 실험은 실험의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힌두철학에서 말하는 자아, 즉 각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속성인 아트만(Atman)도 수학의 공리처럼 다분히 객관적이고 기초적인 개념으로서, 범우주적 진리인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하나임을 역설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개인차는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아트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며, 신은 개개인의 아트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트만에서 출발하여 브라흐만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힌두철학은 실험적 사실로부터 범우주적 진리를 찾아내는 물리학과 유사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학과 종교 중 어느 한쪽이 우월하여 다른 한쪽을 선도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힌두교와 원시불교, 도교, 선불교 등 동양의 종교에 기반을 둔 사상과 양자역학 및 상대성이론으로 대변되는 현대물리학의 우주관을 개별적으로 소개한 후 이들 사이의 유사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칫하면 괴리되기 쉬운 과학과 종교의 이념을 조화롭게 융화시키고 있다. 1970년대에 쓰여진 책이라 현대 이론물리학의 총아인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 빠져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역사 깊은 종교와 물리학을 한 눈에 개괄하고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 서울신문 (2005.3.22),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은 1975년 처음 출간되면서부터 이른바 '신과학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며 논란의 중심에 놓여 왔다. 물론 동양과 서양에 대한 지나친 이분법적인 접근, 신비주의적 주관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등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객관주의와 가치중립성의 신화로 무장된 현대 과학의 오만함과 한계를 비판하는 데 이 책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자연과학 이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꼭 그 전문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경우에는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자연관이 지닌 특징과 문제점, 그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읽더라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뉴턴 이래 물리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과학의 각 분야들은 인간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고전 물리학은 인간이 자연의 모든 현상을 합리적인 논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언젠가 인간은 전지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또한 고전 물리학은 순수한 객관주의에 기초해 있었다. 관찰 대상은 주관과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거기 존재해 있는 것이므로, 관찰의 과정에서 주관적 요소들을 배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만은 현대 물리학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즉 20세기에 들어와서 물리학이 다루게 된 극대 세계와 극소 세계에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인과율, 질량적 물질 등의 고전 물리학적 개념은 모조리 파기되어 버린 것이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비판되었으며, 고전 물리학의 철칙이었던 인과율은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도입하여 양자역학을 수립함으로써 원자의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개념으로 전락하였다. 또한 고전물리학에서 생각했던 단순한 질량적 물질은 양자 물리학에서 합리적 이해를 초월하는 자기 모순에 가득 찬,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 되어 버렸다.
카프라는 물질의 궁극체가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며, 물질적 존재란 전일적인 것의 한 과정으로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자연관이 주관주의에 입각한 동양사상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이라는 기계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데 동양의 유기체적 생태학적 사상이 지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카프라는 오늘의 산업 문명이 여러가지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데에는 인간의 주관적 요인을 무시하고 객관적 지식만을 강조한 현대 과학의 태도에 주요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객관적인 지식과 주관적인 성찰이 통합된 새로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 1939, 오스트리아 출생) 영국의 임피어리얼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원자 물리학 연구소로 이름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버클리에서 입자이론연구를 하고 있는 세계적 핵 물리학자이다. 그는 물리학 전문지에 입자 물리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논문을 여러 차례 발포하고, 로스앤젤러스의 절에서 선(禪)을 연구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 고전물리학 (Classical Physics)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양자역학)이 나타나기 이전인 20세기 초까지의 물리학을 가리킨다.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근간으로 하며 공간과 시간이 절대화되어있으며 거시적인 성질만을 다룬다.
-. 현대물리학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으로 불리는 상대성이론(거시세계를 잘 설명함)과 양자론(양자역학, 미시세계를 잘 설명함)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소립자물리학, 우주물리학 등의 학문. 상대성이론은 광속도와 우주 등 광대한 세계의 물리학 이론이고, 양자론은 전자와 소립자 등 마이크로세계의 구조와 법칙을 해명하는 이론이다.
Posted by o자세o (pose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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